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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문화예술 희망을 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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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mgsof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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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문화예술 희망을 품다
오창석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대외협력부 과장)
10월, 장애문화예술계가 그토록 희망했던 장애인문화예술센터가 개관한다. 비록 일부 논란을 겪기는 했지만 장애인문화예술의 둥지가 될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음에는 여지가 없다. 장애인문화예술단체들은 꾸준히 늘어났고 공연 및 전시 경험들도 축적됐다. 바야흐로 장애인문화예술의 부흥이 시작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들이 답보할 것인지 아니면 확대될 것인지 또 어떤 방향성이 장애문화예술계를 리드할 것인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장애문화예술의 대안들이 요구되는 시점에 부족하지만 넌지시 장애문화예술에 대한 희망을 담아 소견을 나열해 보았다.
장애문화예술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 우선 장애문화예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 전에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묻고 싶다. “장애문화예술은 장애인이 등장하거나 창작에 관여하기만 하면 모두 장애인문화예술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 중 ‘오즈의 마법사’라는 영화가 있다. 1939년 제작된 영화로 주제곡 ‘오버 더 레인보우’는 아직도 공연 및 광고음악 등에 많이 사용된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수십 명의 장애인이 대거 등장한다. 무려 40여명의 실제 장애인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등장한다. 탈을 뒤집어쓰거나 특수 분장으로 로봇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가지도 않는다. 아무튼 필자가 알고 있는 영화 중 실제 장애인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영화다. 그럼 이 영화는 장애인영화인가? 이번엔 전혀 반대의 영화가 있다. 장애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이지만 실제 장애인은 등장하지 않는 경우다. 비장애인이 장애인 역을 수행하기 때문에 실제 장애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 이 영화는 장애인영화인가? 장애를 주제로만 할 뿐 실제 장애인이 등장하거나 제작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장애문화예술이라 할 수 있는가? ![]() 에이블아트를 국내에 소개했던 주윤정 박사의 장애문화예술 정의에 따라 위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장애문화예술를 정리해 보겠다. 먼저 가장 포괄적인 개념. 즉, 장애와 관련된 모든 문화예술을 '장애문화예술'이라는 큰 틀로 잡는다. 그리고 그 안에 장애인이 참여하고 주체가 되는 문화예술활동 영역을 '장애인문화예술'로 구분하고, 비록 장애인이 참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장애에 대해 다루는 문화예술영역을 '장애주제문화예술'로 구분한다. 다시 정리하면 주제나 방향성이 장애와는 무관하다 하더라도 장애인이 참여하는 문화예술로 '장애인문화예술' 이라한다. 또한 비록 장애인의 참여가 없다고 하더라도 장애를 주제로 한다면 이를 '장애주제문화예술'이라는 영역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이 모두를 포괄하는 영역을 '장애문화예술'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 이렇게 장애문화예술의 영역을 구분하고 정의하게 되면 사업의 방향성이 좀 더 명확해진다. 먼저 '장애인문화예술' 영역은 문화예술의 창조성과 자기표현 등 순수문화예술의 목적성에 기반을 둔다. 이 영역의 방향은 문화예술의 저변확대나 역량강화 등으로 설정된다. 이렇게 문화예술의 순수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장애인의 경우 장애인문화예술가라는 호칭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즉, 창작주제 등이 장애를 다루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왜 장애라는 테두리를 둘러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 영역에서는 문화예술을 근본적인 지향점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장애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장애인문화예술가라는 호칭으로 인해서 장애인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되기 때문에 문화적 역량을 장애극복이나 감동적 접근 등으로 제한하게 되는 역효과를 갖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이 영역은 장애인이라는 명확한 대상이 있어서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이나 정책 등이 이 분야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두 번째 영역인 ‘장애주제문화예술’영역에 대해서도 보다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이 영역은 비장애인의 창작활동과 역량이 장애문화예술로 유입되는 경로가 되기 때문이다. 비장애인 문화예술활동은 장애인에 비해 양적인 면 뿐 아니라 질적 측면에서도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비장애인의 문화역량을 장애문화예술로 유입하고 교류해야 장애인문화예술의 발전을 꾀할 수 있다. 필자가 주목하는 영역은 위 두 영역이 교차하는 영역이다. 즉, 장애인이 장애를 주제로 장애의 경험을 표현하는 분야이다. 이 분야는 오직 장애인만이 가능하며 장애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더 큰 감동과 의미를 전달한다. 시각장애인가수 김국환 노래 중에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오직 너 밖에 안 보인다.’는 내용의 음원이 있다. 노래 제목은 ‘안보여’이다. 비장애인이 이 노래를 불렀다면 정말 사랑의 노래라는 주제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이 이 노래를 부르면 또 다른 의미를 전한다. 이처럼 장애인문화예술 영역과 장애주제문화예술 영역의 교차영역에 해당하는 분야는 장애인만의 또 다른 주제를 전달할 수 있다. 또한 사회인식개선이나 장애인 사회통합이라는 2차적인 성과물도 유도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일본의 경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협업을 통한 문화예술활동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제 결론을 내려 보면 장애문화예술의 황무지 같던 시대에서 장애인문화예술센터도 건립되고 부족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도 별도로 책정되고 있다. 이제 장애문화예술의 효과적인 발전을 위한 체계적인 방안마련이 필요하다. 장애문화예술 영역을 구분하고 이에 맞는 세부사업을 전략적으로 유도하는 방법을 필자는 제안해 본다. 이 방법이 아니더라도 장애문화예술의 발전과 부흥을 위해 새로운 대안과 다양한 방안의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제안은 수도권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장애문화예술의 전국 확산이다. 최근 시군구 기초단위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조례를 통해 장애인문화예술 활성화와 지원의 근거가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기초지방 단위까지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문화예술단체는 없다. 장애문화예술의 양적확산과 질적 성장을 위해 전국 확산의 방안이 마련되고 체계적인 발전방안이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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